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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나를 잃어버렸던 신주

 

가스렌지 소리, 무언가를 써는 소리, 쌀을 씻는 소리.
신주는 자기가 아침의 이 소리를 싫어한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상상을 한다. 59세 아주머니를 시어머니로, 그리고 같이 들리는 목소리는 형님으로. 두 분은 먼저 일어났다. 신주는 쫓아나가서 어제 다 못 한 제사 음식을 해야 하는 둘째 며느리다. 얼른 저 문을 열고 나가서 상을 차려야 한다. 음식 맛을 봐야 한다고 이 텁텁한 입 안을 양치도 하지 말고 그대로 둬야 한다. 그리고 다른 방에선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진저리 나는 명절을 열두 번 보낸 후, 그녀는 소리 로도 .

쉐어하우스 2번 방. 신주는 방에 꼼짝 않고 누워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예 일찍 집을 나섰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며칠 전 저 나이드신 분의 사정을 듣고 약간의 동질감을 느껴 오열했고, 후회했다. 그 후 눈을 떠도 거실을 지나다니는 게 편하지 않다. 저분은 아침마다 음식을 한다. 편하게 지내야 할 쉐어하우스에서도 저분은 습관처럼 음식을 한다. 40년 넘게 지겹도록 삼시세끼 밥을 차려왔으면서도 여기와서까지 밥을 한다. 이제 그만 하겠다고 여기까지 왔으면서. 신주는 저 소리가 고통스럽다.

아니야, 여긴 그저 여행지일 뿐이야. 신주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고 욕실로 향했다. 세수를 하고 나왔는데 접시에 브로콜리 죽이 담겨 있다.

마치 설날 시댁에 온 이 기분은 뭘까. 억지로 일으키는 이 몸은 음식을 하기 위해 나가는 몸이 되어버린 것 같다. 신주는 6년동안 정체를 모르는 조상을 위해 상차림을 해야 했다. 그리고 남자들은 상에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고 10분 정도 제사를 끝내면 술을 마시는 게 다였다. 그녀는 일꾼이었다. 일꾼이 될 필요가 없었는데 그러고 있었던 거다. 제 2의 시어머니는 현실에 눈을 뜨게 해 줬다. 그리고 어제 떠났다. 그럼 이제 그녀가 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답이 나오고 있다.

태리가 놀러 왔다. 5년 간 버텨오던 회사에서 갑자기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시행했고 태리는 직종과는 관련 없는 물류관리팀으로 발령이 나 버렸다. 그만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며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내 숙소에서 이틀을 묵게 됐다.

혼자 생각을 정리하겠다고 했을 때 유일하게 찾아와 준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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