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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남 일에 갑자기 끼워넣어졌다


나는 그냥 보통 인간들과 서슴없이 잘 지내는 편이다. 그게 누구든 그냥 재밌게 놀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새로운 것, 재미있는 것을 찾아나선다. 개그코드가 잘 맞으면 또 그 길로 빠져서 이 말 저 말로 수다를 이어간다. 이번엔 정말 기가 막히게 신기한 ‘내가 너무 친해서 남의 연애사에 갑자기 끼어버리게 된 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어찌저찌하여 나는 어떤 친구와 마치 엄청나게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남매 또는 도플갱어처럼 소름끼치도록 쿵짝이 잘 맞아서 하루하루를 만담하듯 마구마구 떠들었다. 그 떠듦은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계속됐고 코로나로 인해 입이 안 떨어지던 지난 날을 보상이라도 받듯 우리는 대단히 신이 나 있었다. 어느날 만나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곧 만날(내가 보기에는 이미 사귀시는) 연인이 존재하였는데 그 연인으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여 나는 아이구 좋겠네 하고 부러워했다. 예비 연인이 오해할 수 있다고(무엇을) 나더러 통화를 하라는데 나야 뭐 너만 행실을 똑바로 하면 상관 없으니까 좋다 하며 그 부러운 분과 살짝 인사했는데 그분의 말로는 내가 취해있었다고 말했지만 어쨌든 참 신나는 인사였던 걸로 또렷이 기억하는 걸로 보면 그다지 취하진 않았다.

자기 연인을 소개해 준 그 날 이후 그친구와 더욱 친하게 지내게 되며 수다의 빈틈은 점점 줄어들게 됐다. 그런데 정말 기이한 건 두 사람의 데이트 현장에서도 남자애는 특파원 연결하듯 나에게 전화를 해댔는데, 언뜻 얘기를 들어보니 그친구와의 의식의 흐름속에 이어갔던 에피소드는 모두 예비 연인의 귀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만취한 여자애가 나에게 보고싶다, 언니는 너무 멋지다 말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그냥 내남자 건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내가 왜? 내가 언제 뭘 어째?

어쨌든 모든 맥락은 거침없이 남자애에게 추파를 던지는 모습이었고 나는 그 코에 뭔가 잔뜩 들어간 듯한 하이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아이고 얘가 저 친구가 정말 너무너무 좋은가보구나, 참으로 용쓰는구나 했다. 어차피 그 둘 사이는 내 알 바 아닌데 용쓰는 것의 수단으로써 몹시도 내가 이용되고 있어서, 처음엔 웃기다가 시간이 지날 수록 왜 날 중간에 끼워넣는거지? 하는 의문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30여 분이 흘렀다. 전화 건너 그 두 사람은 점점 연인 관계가 확실해지는 듯 했고 나는 그만 전화를 끊기 위해서 “예, 두 분 잘 만나시구요” 라고 이야기 했으나 그 말이 술마신 두사람 귀에 들릴 리 없었다. 끊을 타이밍을 놓친 나는 언제까지 이 전화를 붙들고 이들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어야 할까 생각하고만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역사가 이루어진듯 했다.

다음날 남자애는 나에게 사과를 했다. 여자애가 실수한 것도 대신 사과한다고 했고 나는 사과를 받지 않았다. 별 어이없는 관계 사이에 끼워진 게 모욕적이고 기가 차고 황당하고 화가 나서 사과를 받을 생각이 없었다. 남자애는 말투가 돌변하여 그동안의 친했던 관계도 없애버릴 정도로 몹시도 깍듯하게 사과를 했으나 왜 사과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도마 위에서 잘근잘근 썰려버리는 동안에 어쨌든 너희들은 연인이 됐잖아? 그럼 나도 됐어.

근데 한편으론 신선하기도 했다. 늬들이 사는 세상은 나와는 너무 멀어서, 늬사세에 대한 체험을 나에게 시켜줬다는 생각에 난 갑자기 폭삭 늙은 어느 변방의 노인이 되어버린 연극무대같았기 때문이다. 멀리 보면 상당히 경험해볼 수 없는 경험이어서, 나는 화도 나면서 세상 신기한 연애사를 보며 동공이 확장되고 있었다. 웃음도 나왔다. 아주 정말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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