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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동네 세탁소가 문을 닫는다

가끔 옷을 맡기던 오래된 세탁소가 있다. 가격이 저렴하기도 했지만 선한 인상의 할아버지께서 다림질을 하시던 곳. 어찌 시간이 나지 않아 겨우 옷이나 이불 세탁을 맡기고는 몇 달이 지나도록 찾아가지 않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연락 한 번 없던 세탁소 번호로 오늘 전화가 왔다. 오 이제 찾아가라는 전화도 하시는군 하고 전화를 늦게 받았다가 그냥 끊어져버렸다. 저녁에 옷도 찾을 겸 산책을 나갔다가 '폐업'이라 붙여놓은 종이를 보게 되었다.

눈물이 날 뻔했다. 그 전화는 아마도 몇 주 지나면 더이상 세탁물을 맡을 수 없으니 그만 모두 찾아가라는 전화였겠구나. 천천히 정리하고 계신 거겠구나.

이동네에서 5년 이상 살면서 세탁소에 몇 번 가보지 못했지만, 가끔은 할아버지를 보고 그사이 많이 늙으셨네 하면서 계속 세탁소를 하실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조금 했었다. 그런데 정말 문을 닫는다.

코로나로 인한 것일까. 옷을 찾으러 가 조심스럽게 여쭤 보았다. 할아버지는 “아니에요. 그냥 이제 내 삶을 좀 살려고 하는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30년은 되어보이는 곳인 만큼 이해가 갔다. 오랫동안 묵묵하고 성실하게 세탁소 일만을 하셨을 것이다. 시원섭섭하실 것 같다.

할아버지는 이때쯤이면 일을 그만할 거라고 생각을 하셨을까? 일 만큼은 세상 최고의 장인이시겠지. 일하시는 동안 많은 옷감을 세탁하셨을 것이고 수많은 손님들과 마주하셨겠지. 그만두실 날, 얼마나 많은 생각이 머릿 속을 스쳐갈까.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사실까.

그리고 나의 인생도 왠지 모르게 닮아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를 아주 오랫동안 하고 때마침 그만두는 날. 할아버지처럼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젠 내 삶을 찾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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