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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사람 관계에 서툴게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살면서 별 희한한 일을 다 겪어 본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일까. 내가 사람 관계에 ‘서툴다’ 느끼게 된 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누군가에게 어느 정도 존재감이 있었으며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었나. 얼마나 상처를 주고 있었나. 나는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나. 만약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이런 관계를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었을까. 나는 분명히 예전에도 외로웠지만 뭘 해서든 신나게 살고 있었는데. 관계가 시작되었다가 꺼져가는 불씨라도 겨우 붙잡고 있다고 느끼는 건 하필 지금이 코로나여서일까 아니면 또 누굴 잃을까 봐 무서워하는 나 때문일까. 이 질긴 코로나는 인연을 떼어내기도 하는 걸까. 끊어진 것도 아니고 끊을 것도 없으면서 혼자 망상을 하고 있는 걸까.

어떤 관계는 가늘고 길게 간다. 가늘고 길게 가는 관계는 살아있는 것만 알고 있어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또 어떤 관계는 아주 짧고 굵게, 불타올랐다가 훅 꺼져버린다. 어떤 관계는 아주 가늘고 짧게 끝나기도 하는데, 그저 심심할 때 떨던 아주 가벼운 수다를 설레는 속삭임이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그렇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 대화들. 이런 아무말 대잔치에 의미를 붙이는 순간, 모든 단어들은 달콤한 환상으로 변한다. 그리고 그 환상은 끝이라 부르기도 민망하게 멈춰 버린다. 뭐가 있었어야 끝도 있는 거 아닌가. 의미도 없는 걸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게 웃긴 거지.

대화라는 것은 원래부터 재미있는 것이다. 코드가 맞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 재미는 몇 배로 커진다. 얘기를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끝나야 하는 대화가 끝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때에 대화가 시작되는 것에서 왠지 모를 묘한 낌새를 알아차린다. 설마? 이때부터 판타지가 시작되었다가, 얼마 못 가서 한여름밤의 꿈임을 깨달았다가, 또다시 판타지 속으로 빠졌다가 한다. 곧 무너지는 날이 온다. 아주 매우 자주 엄청난 양의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하지 않으면 공허해진다. 갑자기가 아니라 서서히 점차 하지 않으면, 마음도 서서히 점차 괴롭고 힘들어진다. 곧 환상의 세계에서 쫓겨난다. 공허함에 몸서리치고 마치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양 괴로워한다. 코로나는 정말 대단하구나. 단지 사람과 하는 말이 즐겁고 그리웠을 뿐인데도 코로나 때문에 이런 고통이 시작되나. 모든 사람들과 그랬었단 말인가. 당신과 나의 생각은 뭐가 달랐던 걸까. 그렇게 어느새 서서히 대화가 줄어들고 결국 내 쪽에서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영영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 또한 더 이상 이야기를 시작할 수가 없다. 이제 너의 말을 들어주기 귀찮다고, 나의 마음은 너와 같지 않다고 신호를 주며 밀어내는데 나도 그냥 알겠다고 수긍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지 않나.

그렇게 사람을 대하는 데 서툴러서, 나는 한 사람을 잃었다. 11년 동안 옆에 있었지만 옆에 있지 않았다.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니 하루에 한 마디도 하지 않은 날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혼자 이야기했고 그 사람은 대답을 하지 않거나 단답형으로만 대답했다. 그게 너무 숨막혀서 나는 혼잣말을 했고, 책을 낭독했고, 희곡집을 들고 1인 다역 연기도 했다. 미친 사람처럼 놀았다. 나는 송장 같은 사람 옆에 있는 게 지쳐서 나가떨어졌고 결국 전혀 의지 되지 않는 삶을 그만하기로 했다.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전혀 알 수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지 않았다. 오래가지 못했다. 코로나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관계에 서툴렀다. 내 탓이라고,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그런 적막 가운데서, 계속 끊이지 않던 대화는 사막의 오아시스였을지 모른다. 아, 이제 살았구나. 그래서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붙잡고 물을 마시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물은 한 군데도 없었다.

얼마 전 심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역설적 의도’라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면 의도하지 않게 더 많은 실수를 범하게 되기 때문에 아예 일부러 더 실수를 해버려서 상황을 벗어난다는 것이다. 나도 엄청 많은 실수를 해 와서 상대를 질리게 만든 건 아닐까 하고 그동안 했던 수많은 대화를 찬찬히 읽어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했던 이야기들이 전부 실수로 보이기 시작한다. 내 감정이 어떤지는 한 개도 표현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사려 깊게 들어준 적도 없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나의 감정을 알아주길 바랄 수 있을까. 나의 최대 실수는, 나 스스로를 차단한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버려서 더 이상의 불안함을 만들지 않는 것도 역설적 의도가 맞다면, 내가 지금 붙들고 있는 오아시스를 놓아버리는 행동은 역설적 의도를 최고로 어리석게 활용한 모습일 것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과한 것을 더 과한 행동으로 사전에 버려버리는 것은 김칫국을 시원하게 들이켜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성찰은 가장 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한다. 여기 몹시 병신인 내가 있네, 내가 왜 그랬을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내가 멍청했어, 내가 오바했어, 내가 괜히 착각했어, 내가 이럴 때가 아니잖아, 걔는 아무 뜻도 없는데 나는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모든 화살이 나 자신에게로 쏠리는 건가. 감정이란 절대로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흘러갈 수 없는데 왜 자책하는가. 그냥 이렇게 생각해라. 아 그때 그랬었지, 그럴 수도 있지, 그랬었나 보다, 그러라 그래. 그땐 내가 누굴 좋아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었고, 너무나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었고, 그럼에도 설레고 행복했던 걸로 충분하다고. 아주 어쩌면, 겉으로 보이는 나의 반응에 아 이 사람은 아닌가 보다 하고 등을 돌린 누군가가 있었던 거라고. 표현하는 방법이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겪어보니 한쪽에서 상대가 자기와 맞지 않아서 등 뒤로 숨겨두었던 꽃다발을 그 길로 쓰레기통에 버린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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