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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우리의 만춘을 들으며

음악으로 남아있는 서점.

한 달 살기로 한동리에 머물면서 제주에 있는 독립서점들을 많이 돌아보았다. 걸어 다니거나 버스로 이동 가능한 곳들을 주로 찾아다녔다. 그중에 음악으로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만춘서점. 201번 버스를 타고 함덕리 4구 정류장에서 내린다. 함덕리 교차로를 향해 걷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이보리색 건물이 보인다. 간판이 크지 않아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서점인지 카페인지 모를 깔끔한 건물이다. 쉽게 갈 수 있는데, 한 번은 어쩔 수 없이 지나쳤었다. 제주는 체감상 해 지는 속도가 매우 빨랐고 저녁이 되면 한동리는 눈 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하기 때문에 6시 전까지는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적당히 이른 시간에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오 여기 천국이야 뭐야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책들이 어찌나 내 취향이던지. 그동안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닌데 책장에 내가 읽은 책들과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로 가득한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김민철, 김하나, 최민석, 이석원, 황정은 님 등 너무너무 좋아하는 작가분들의 책들 위주로 진열되어 있는 것이었다. 아 여기다! 싶은 느낌이 아주 선명하게 들었다. 한 칸 한 칸 발걸음을 옮겨가도 또 좋아하는 책들이 계속 보였다.

 

 

 

 

서점에서는 또 그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다시 들어봐도 목소리가 정말 독특했다. 책방무사에서 듣고 바로 음악 검색을 했던 것 같은데, 수상한 커튼이라는 아티스트였다. 어찌 또 듣네. 아 좋다. 계속 들으면서 책들을 구경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어떤 음반 소개 코너 앞에 서 있었다. 이 음악에 대한 소개였다. 응? 내가 지금 들어와 있는 서점이 바로 이 노래들의 주인공이라고? 앨범 제목 또한 「우리의 만춘」. 만춘 서점이 제주에 오픈한 지 3주년이 된 기념으로 강아솔+수상한 커튼+이아립 세 명의 싱어송라이터와 만춘서점 사장님이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아 이 만춘서점이 그 만춘이라고?? 서점 오픈 3주년 기념 앨범은 정말 처음 본다.

 

 

 

영감을 얻은 책들

음악을 만드는 데에 각각의 싱어송라이터가 영감을 얻은 책이 소개되었다. 근데 정말 우연치고는 너무 신기해서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연실 놀랐던 부분은 수상한 커튼의 책 제목이었는데, 다름 아닌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였다. 독서모임의 1월 주제로 선정된 책이었던 것이다. 이건 참 무슨 인연인 건지. 아래는 영감을 받은 책이다.

 

강아솔 : 디스옥타비아 / 유진목

수상한 커튼 :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 파스칼 키냐르

이아립 :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 이제니

 

나는 수상한 커튼의 노래들이 더욱 좋아져서 직원분께 키냐르의 책 위치를 물어보다가, 이 분과도 취향이 맞았는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게 됐다. 직원분의 설명에 의하면, 프로듀싱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등을 쓴 김하나 작가였고, 앨범을 구매하면 ‘모든 요일의 기록’ 달력을 선물로 주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그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기록」 이었다. 김민철 작가의 책에는 강아솔 님의 노래 '남겨진 사람들'이 소개됐었고 나는 늘 그 가사를 곱씹었었다. 수상한 커튼은 목소리에 반했는데 제주도에 한 달간 살면서 정말 많이 들었다.

 

만춘 앨범 커버는 이아립 아티스트가 디자인했다고 하는데 단순하면서도 의미가 담겨 있었다. 파란 선은 함덕 바다를, 흰 선은 눈 내리는 모습을, 그리고 가운데의 삼각형이 만춘서점을 의미한다고 한다. Track 1번 Dear을 듣기 시작하면 이 앨범 커버가 얼마나 음악에 녹아내리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모든 수록곡이 그러했다. 마지막 트랙인 '눈내린 만춘'은 특히 앨범 커버와 너무 잘 어울렸다. (이건 그냥 내가 반한 것일지도 몰라.)

 

제주 서점과 카페들의 끈끈한 커넥션에 감탄하기도 했다. 만춘서점은 책과 음반을 판매하는 것 외에도 사장님 부부의 집에서 북토크나 공연도 여는 곳이었다. 소심한 책방, 책방 무사, 언제라도북스 등 제주도의 독립서점들은 대부분 연결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나의 남은 제주생활 기간에는 예정된 공연이 없었지만, 뭔가 제주도의 책문화와 좀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 따뜻해졌다.

 

 

 

결국 우사정 - 독서모임에서 이렇게 줄여 부르기를 했다 -, 그리고 직원분의 추천 도서 1권과 내가 읽고 싶은 책 1권, 그리고 우리의 만춘을 구매했다. 키냐르의 책은 제주의 여러 카페들을 돌며 다 읽었다. 책과 동일한 제목의 노래를 들으며 읽었더니 음악과 책의 문구와 제주도의 모습이 계속해서 오버랩되었다.

 

지금도 나는 이 앨범을 들으면 마음이 촤아악 가라앉으면서 눈앞에 푸른 제주 바다가 펼쳐진다. 내가 걷던 길. 음악을 따라 녹음해 본 한동리의 파도소리.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책을 읽으면서 당근케이크를 한 입 물고 녹이며 커피를 마시던 그때로 돌아간다. 언젠가는 또 예전처럼 조급한 마음이 생길지 모른다. 그땐 또 우리의 만춘을 듣고 지긋이 눈을 감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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